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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 AI 영상 (조롱 콘텐츠, 사자명예훼손, 퍼블리시티권)

호풍이 2026. 5. 11. 22:53

ㄴSNS 피드를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멈칫하게 되는 영상이 있습니다. 흑백 사진 속 인물이 낯익은데, 그 위에 입혀진 효과음과 말투가 영 불편합니다.

저도 얼마 전 그 순간을 경험했고, 알고리즘은 곧이어 비슷한 결의 영상을 줄줄이 내놨습니다. 고인을 활용한 AI 조롱 콘텐츠가 무법지대에서 퍼지고 있는 지금,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짚어보려 합니다.

 

고인을 ai 모습으로 나타낸 모습

 

1. 고인 AI 영상, 법이 막지 못하는 조롱의 사각지대

3·1절을 전후해 유관순 열사를 희화화한 AI 영상이 온라인에서 확산됐습니다. 투옥 당시 흑백 사진을 AI로 복원한 뒤 방귀 효과음을 입히거나 로켓 합성을 한 영상들이었습니다.

안중근 의사 순국일 즈음에는 열차와 풍선에 안 의사 사진을 합성하고 방귀 소리를 넣은 영상이 한 영상 플랫폼에만 5개 이상 올라와 누적 조회수 13만 회를 기록했습니다. 윤봉길, 김구 선생 등 다른 독립운동가를 겨냥한 영상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현행법으로 이를 막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고인을 모욕하는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조항이 사자명예훼손죄인데, 여기서 사자명예훼손죄란 죽은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으로, 핵심은 "허위 사실을 적시했을 때"만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실 여부를 따지지 않는 단순 조롱이나 욕설은 처벌 대상에서 벗어납니다. 모욕죄는 아예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므로, 고인을 향한 직접적인 비하 표현도 법 밖에 놓입니다.

퍼블리시티권(인격표지영리권)이라는 개념도 논의 테이블에 올라왔습니다. 퍼블리시티권이란 자신의 성명, 초상, 목소리 등 정체성 요소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합니다.

우리 정부는 2022년 민법 개정을 통해 고인의 이러한 권리를 사후 30년간 보호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유명인 얼굴을 이용한 비판과 패러디까지 막을 수 있다는 우려로 논의가 중단된 상태입니다.

제가 사회복지 현장에서 사별 유가족을 자주 만나다 보니, 이 문제가 단순한 법리 논쟁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한 어머니가 돌아가신 아들의 이름이 무관한 게시물 닉네임으로 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며칠을 앓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정도의 우연한 마주침도 그런데, 고인의 얼굴이 조롱 합성 영상에 등장한다면 어떨까요. 한 유가족이 "마음을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다"고 표현한 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현행법의 공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사자명예훼손죄는 허위 사실 적시가 있어야만 적용 가능. 조롱·욕설은 해당 없음
  • 모욕죄는 생존 피해자에게만 적용. 고인에게는 적용 불가
  • 퍼블리시티권(인격표지영리권)은 민법 개정 논의 중단으로 현재 법적 근거 없음
  • 저작권법은 사진 원본 저작권과는 별개로 인물 자체의 권리를 보호하지 않음

 

2. 돈줄을 끊는 것이 현실적인 해법, AI 슬롭과 플랫폼 책임

솔직히 저는 이 문제를 처음 접했을 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설마 저런 영상으로 돈이 되겠어?" 그런데 조회수 13만 회라는 숫자를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조회수가 곧 광고 수익이 되는 구조에서, 고인을 향한 조롱이 이미 수익 모델로 작동하고 있었던 겁니다. 제작자는 수익을 챙기고, 유족은 화면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합니다. 한쪽은 돈을 벌고, 한쪽은 송곳에 찔립니다. 이 비대칭 앞에서 법이 침묵할 때, 그 침묵 자체가 한쪽 편을 드는 일이 됩니다.

이런 콘텐츠를 가리키는 업계 용어가 AI 슬롭(AI Slop)입니다. AI 슬롭이란 AI가 대량으로 생산한 저품질 콘텐츠를 뜻하는 표현으로, 의미 없는 합성 영상, 무분별한 클립 재조합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한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은 2024년 7월부터 비진정성 콘텐츠(Inauthentic Content)에 광고 수익을 배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비진정성 콘텐츠란 창작자가 실제로 제작하거나 경험한 것처럼 꾸미지만 실제로는 AI나 자동화로 대량 복제된 콘텐츠를 의미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영상들에 메시지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표현의 자유 논쟁에서 자주 언급되는 풍자는 권력의 부조리를 짚거나 사회 모순을 비추는 비판적 의도가 있어야 성립합니다.

그런데 독립운동가에게 방귀 효과음을 입히는 영상에서 그런 메시지를 찾기란 불가능합니다. 이건 풍자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을 빌린 영리 활동에 가깝습니다. 두 개를 같은 자리에 두고 보호할 이유는 없습니다.

딥페이크(Deepfake) 기술의 대중화도 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딥페이크란 인공지능 기술로 특정 인물의 얼굴이나 음성을 다른 영상에 자연스럽게 합성하는 기술로, 과거에는 전문 장비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앱 하나로도 가능합니다.

진입 장벽이 낮아질수록 제작되는 콘텐츠의 양은 늘고, 피해 범위도 그만큼 넓어집니다. 어제는 정치인이 표적이었다면 오늘은 독립운동가, 내일은 누구의 가족일지 모릅니다.

가장 실질적인 해법은 결국 제작 유인, 즉 돈줄을 끊는 것으로 보입니다. 법이 기술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지금, 플랫폼 차원의 수익 배제가 가장 빠른 억제 수단입니다.

 

한 법조계 인사도 형법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새로운 입법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입법이 완성되기까지의 공백을 플랫폼이 메워야 하는 시점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지만, 그 자유가 타인의 존엄을 밟을 권리까지 포함하지는 않습니다. 죽은 사람은 항의할 수 없으니 모욕해도 된다는 신호를 사회가 묵인하는 건 아닌지, 영상을 보고 멈칫했던 그 불편함이 지금도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습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콘텐츠를 신고하고, 조회수에 기여하지 않는 것입니다. 플랫폼의 정책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동시에, 우리가 무엇을 소비하는지를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볼 때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법률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