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수어 서비스 (접근성, AI 아바타, 영상통역)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면서 청각장애인 어르신과 응급실에 간 적이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어지럼증이었는데, 그 시간에 수어통역사를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종이에 필담으로 버텼지만, 진료가 끝난 후 어르신이 "내가 뭘 검사받은 건지 잘 모르겠다"고 하시는 말씀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청각장애인에게 병원은 단순히 물리적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의사소통 자체가 막히는 공간이라는 걸 그날 제대로 실감했습니다.

1. AI 수어 통역이 메우는 청각장애인 의료의 사각지대
청각장애인의 의료 접근성 문제는 체감이 아니라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2022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각·언어장애인의 미충족 의료 경험률은 비장애인 대비 약 2배 이상 높습니다.
미충족 의료 경험이란 병원에 가야 한다고 느꼈지만 실제로는 가지 못한 상황을 의미합니다. 비용이나 거리 문제가 아니라 의사소통 장벽 때문에 진료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포함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제가 현장에서 만난 분들 중에도 만성질환 진료를 통역사 일정 문제로 몇 주씩 미루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당뇨나 고혈압처럼 정기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질환인데도 말입니다. 병원이 두려운 게 아니라, 가도 제대로 소통이 안 된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겁니다.
이번에 서울의료원에 도입된 AI 수어 아바타 서비스는 바로 이 구조적 공백을 겨냥한 시도입니다. 서울시 테스트베드 서울 실증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이 사업은 단계적으로 확대됐습니다.
- 1월: QR코드 기반 위치 안내 서비스 및 실시간 수어 통역 연계 기능 도입
- 4월: 3D 수어 아바타 키오스크 추가 설치
QR코드 기반 안내는 병원 정문과 후문에 설치된 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접수와 수납창구, 채혈실, 영상의학과 등 주요 시설 위치를 3D 수어 아바타 영상으로 안내하는 방식입니다. 지도와 현재 위치도 함께 표시되어 공간 파악이 쉽습니다. 솔직히 이건 처음 들었을 때 예상보다 훨씬 실용적인 구성이라고 느꼈습니다.
2. AI 아바타와 사람 통역사, 역할이 정확히 나뉜 구조
3D 수어 아바타란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된 가상 인물이 수어 동작을 실시간으로 구현하는 기술입니다. 단순한 영상 재생이 아니라, 입력된 정보를 수어 문법에 맞게 변환해 표현하는 구조입니다.
이 기술이 키오스크에 적용되면서 번호표 발급, 외래 진료 안내, 입·퇴원 절차, 건강검진 안내 같은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정보는 AI가 처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있습니다. AI 아바타가 강한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이 분명히 다릅니다.
"채혈실은 3층입니다"는 AI가 충분히 전달할 수 있지만, "이 증상이 언제부터 시작됐나요?", "어지럼증이 갑자기 오나요, 지속적으로 오나요?"처럼 맥락이 필요한 대화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이 부분을 메우는 것이 핸드사인톡톡을 통한 3자 영상통화 기반 수어 통역 서비스입니다. 3자 영상통화란 청각장애 이용자, 병원 직원, 원격 수어통역사가 동시에 하나의 화면에 연결되는 방식으로, 통역사가 현장에 없어도 실시간으로 진료 상담이 가능한 구조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가 없을 때는 의사가 빠르게 설명하면 필담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속도와 정확도 모두에서 한계가 있었습니다.
기존 방식과 비교하면 차이가 분명합니다. 예전에는 수어통역사를 사전 예약하거나 직접 동행시켜야 했는데, 이 서비스는 필요한 순간에 앱을 통해 즉시 호출하는 방식입니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됩니다. 24시간 대응이 아닌 점은 아쉽지만, 정규 외래 진료 시간을 커버하는 것만으로도 실질적인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3. 의료접근성, 인력 한계를 정확히 뚫은 좋은 모델
이번 서비스가 의미 있는 이유는 기술과 사람이 역할을 나눈 구조 때문입니다.
AI 수어 아바타는 정보 전달의 1차 접점을 담당하고, AI가 처리하기 어려운 실시간 쌍방향 소통이 필요한 순간에는 원격 수어통역사가 연결됩니다. 기술이 사람을 완전히 대체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약점을 보완하는 방식입니다.
저는 솔직히 이 서비스의 단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모든 병원이 수어 가능한 인력을 상시 고용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인력을 구하는 것도, 일정을 맞추는 것도, 비용을 부담하는 것도 모두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AI 수어 아바타와 핸드사인톡톡 같은 영상 통역 연계 서비스는 바로 그 구조적 한계를 정확하게 뚫는 답입니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특정 집단만을 위한 특수 설계가 아니라, 처음부터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설계하는 접근 방식을 뜻합니다. 이번 서비스는 그 방향에 가깝습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별도 창구를 만드는 게 아니라, 병원 이용의 전체 흐름 안에 수어 접근성을 통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접근성이란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서비스와 정보를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합니다. 국내 등록 청각장애인 수는 약 40만 명에 달하며, 이 중 상당수가 수어를 주요 언어로 사용합니다. 40만 명이 병원을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복지 수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4. 보조도구로서의 확산, 속도와 비용이 관건이다
남은 과제는 보급 속도입니다. 서울의료원 한 곳의 사례로 그치면 안 됩니다.
케이엘큐브 측은 의료뿐 아니라 공공, 금융, 교통 분야로의 확장 계획을 밝혔는데, 방향은 맞다고 봅니다. 다만 확장 속도와 비용 분담 구조가 명확해져야 현실화됩니다. 누가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 정부인가, 기관인가, 민간 기업인가. 이 문제가 정리되지 않으면 서비스는 일부 시범 사업에 머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모델 자체에 대한 평가는 분명합니다. 더 편리하고, 접근성도 훨씬 좋고, 인력 고용보다 운영 비용도 합리적일 것입니다. 1차 안내는 AI 아바타가 즉시 처리하고, 깊이 있는 상담이 필요한 순간에는 사람 통역사가 영상으로 연결되는 구조도 정교하다고 봅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는 좋은 사례입니다.
제가 그날 응급실에서 어르신 옆에 앉아 종이에 글씨를 쓰며 버텼던 시간이 다시 생각납니다. 그 상황이 기술로 해결될 수 있다면, 그것은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입니다.
이 서비스가 전국 병원과 공공기관으로 빠르게 확산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분이라면, 가까운 사회복지관이나 청각장애인 지원센터를 통해 현재 이용 가능한 영상통역 서비스를 먼저 확인해 보시는 것도 좋은 출발점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또는 복지 서비스 이용에 대한 공식 안내가 아닙니다. 구체적인 서비스 이용은 해당 기관에 직접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참고: 출처: 보건복지부
참고: 동아일보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