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회사에서 기획서를 작성할 때 ChatGPT를 처음 사용했습니다. 마감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는데 아이디어가 막혀 있던 상황이었죠. 반신반의하며 "신제품 마케팅 전략 10가지"를 요청했더니 30초 만에 그럴듯한 목록이 나왔습니다. 처음엔 놀라움과 함께 '이게 정말 제 능력인가?'라는 묘한 죄책감이 들었어요. 하지만 결과물을 다듬으면서 AI는 재료를 제공할 뿐, 최종 판단은 여전히 제 몫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후로는 리서치나 초안 작성에 AI를 적극 활용하게 됐고, 아낀 시간에 더 창의적인 부분에 집중할 수 있게 됐습니다.

1. AI 창작물과 인간 고유성의 경계
최근 AI가 그린 그림이 미술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거나, AI 작곡이 음원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심지어 GPT-4 기반 언어모델의 IQ는 140에 육박하여, 작년까지 100 미만이던 수준에서 급격히 상승했습니다([출처: OpenAI 기술보고서](https://openai.com/research)). 여기서 IQ란 논리적 추론, 언어 이해, 문제 해결 능력을 종합적으로 측정한 지표로, 인간의 지적 능력과 직접 비교할 수 있는 수치입니다. 이제 AI는 단순 반복 작업뿐 아니라 창작 영역까지 넘보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제가 직접 써보니 AI 창작물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ChatGPT에게 "우울한 겨울밤 감성의 시"를 요청해 본 적이 있는데, 문법도 완벽하고 운율도 맞았지만 왠지 모를 공허함이 느껴졌어요. 시인이 겪은 실제 아픔이나 고민이 담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통계적으로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뿐, 존재론적 결핍이나 채워지지 않는 욕망 같은 인간 고유의 감정은 재현할 수 없습니다.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결핍이란 인간이 언어와 의식을 통해 표현하려 해도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근원적 부족함을 뜻합니다. 이런 결핍은 인간에게 창작의 원동력이 되지만, AI에게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입니다. 그렇다면 AI 창작물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저는 창작물 자체로는 인정하되, 창작 '활동'의 가치는 인간 고유의 것으로 남는다고 봅니다. 실제로 많은 미술대학에서는 이미 실기 시험보다 작품 제작 과정과 작가의 의도를 더 중요하게 평가하는 추세입니다. AI가 완성도 높은 그림을 그려낼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느끼는 몰입과 성찰의 경험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과정'의 가치가 부각된다는 점이요. AI 창작물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현상이 또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소니의 강아지 로봇 '아이보'가 고장 나면 장례식을 치러주고, 부품을 기증받아 다른 아이보를 수리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AI나 로봇을 단순한 기계가 아닌,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는 AI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점차 '도구'에서 '동료' 또는 '반려자'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핵심 정리
- AI 창작물은 기술적으로 완성도가 높지만, 인간 고유의 존재론적 결핍은 재현할 수 없음
- 창작 '활동' 자체의 가치는 여전히 인간 고유 영역으로 남음
- 사람들은 AI를 단순 도구가 아닌 감정적 교류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함
2. AI가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공장 자동화는 이미 오래전 일이지만, 최근엔 사무직까지 AI가 빠르게 침투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만 해도 작년엔 없던 'AI 협업 가이드라인'이 올해 생겼어요. 리포트 초안, 데이터 분석, 고객 응대까지 AI가 처리하면서 실제로 팀원 한 명이 줄었습니다. 이런 변화 속도는 과거 산업혁명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인터넷 혁명도 10~15년이 걸렸지만, AI 혁명은 작년과 올해가 확연히 다를 정도로 빠릅니다. 문제는 일자리 총량이 아니라 '전환 비용'입니다. 과거엔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이동하는 데 시간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고학력 화이트칼라 직종이 동시다발적으로 위협받고 있어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사무직 종사자는 약 820만 명인데, 이들 중 상당수가 AI로 대체 가능한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출처: 통계청](https://kostat.go.kr)). 여기서 화이트칼라란 주로 사무실에서 정신노동을 하는 직종을 가리키는 용어로, 육체노동 중심의 블루칼라와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이들이 새 직종으로 전환하려면 재교육과 시간이 필요한데, 그 사이 생계 공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자리가 사라진 미래엔 인간은 무엇을 하며 살까요? 저는 기본소득제가 현실화되면서 '노동 없는 삶'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거라고 봅니다. 사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자유인이 노동을 하지 않았고, 노예가 모든 일을 했습니다. AI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면, 인간은 비로소 '자아실현'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매슬로의 욕구 5단계설을 보면 자아실현이 최상위 욕구로 나오지만, 인류는 아직 그 단계를 제대로 경험해본 적이 없습니다. 여기서 자아실현이란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을 뜻합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인간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저도 휴가 때 '아무것도 안 하고 쉬자'고 다짐했지만, 사흘만 지나도 무료해지더군요. 인간은 단순히 '놀기'만 해서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의미 있는 활동,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경험, 공동체와의 연결이 필요합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잘 놀 것인가'를 디자인하는 사람, 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잘 노는 사람이 가치를 인정받을 겁니다. 유튜버, 스트리머, 네일 아티스트처럼 과거엔 없던 직업이 계속 생겨나듯, 미래에도 우리가 상상 못한 새로운 일들이 등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려되는 점도 있습니다. 기본소득이 충분하지 않다면 결국 '돈 있는 사람은 인간 서비스를, 없는 사람은 AI 서비스를' 받는 양극화 사회가 올 수 있습니다. 인간 의사와 AI 의사, 인간 교사와 AI 교사 사이에 격차가 생기면서 새로운 계급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동료들과 이야기할 때 "이거 AI 쓴 거 아니야?"라는 농담 섞인 질문을 들을 때면 여전히 어색한 기분이 듭니다. 의존도가 높아지는 게 불안하면서도, 이미 돌아갈 수 없는 편리함에 익숙해진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AI와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AI를 단순히 두려워하거나 거부하기보다, 어떻게 활용하고 어디까지 의존할지 스스로 기준을 세우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