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를 가장 열심히 하는 사람이 사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지난 추석, 조카가 챗GPT로 독후감을 완성하는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저는 그 질문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떠올렸습니다. 책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AI가 일과 학습을 바꿔놓은 속도는 분명 빠릅니다. 문제는 그 속도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 제대로 보고 있느냐입니다.

1. AI가 업무를 바꾼 방식, 실제로는 어떨까요
직장인들이 AI를 쓰면서 가장 먼저 실감하는 변화는 단순 반복 업무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보고서 초안 작성, 도면 수정, 코드 디버깅처럼 시간을 잡아먹던 작업들이 눈에 띄게 빨라졌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기획서 초안을 잡는 데 걸리는 시간이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비슷한 사례를 검색하고, 구조를 잡고, 문장을 다듬는 데 반나절이 넘게 걸렸던 작업을 훨씬 짧은 시간에 시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변화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 프롬프트 엔지니어링(Prompt Engineering)입니다. 여기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란 AI에게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질문이나 지시문을 설계하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같은 AI를 쓰더라도 질문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의 수준이 크게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이 능력 자체가 현재 업무 역량의 일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개발자 사이에서는 LLM(대형 언어 모델, Large Language Model) 활용이 이미 일상이 됐습니다. LLM이란 방대한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생성하는 인공지능 모델을 말합니다. 챗GPT, 클로드, 제미나이 같은 서비스가 모두 여기에 해당합니다. 코드 흐름을 점검하거나 오류의 원인을 찾을 때 LLM에 묻는 것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워크플로(작업 흐름)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 편리함이 진짜로 능력을 키우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능력이 필요한 순간 자체를 없애주는 걸까요? 저는 이 질문이 직장인보다 학생에게 훨씬 더 중요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AI가 업무 환경에서 만들어낸 변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반복 업무 자동화로 처리 속도가 크게 빨라짐
- 초안 생성 기능으로 창작 진입 장벽이 낮아짐
- 즉각적인 오류 탐지로 개발·설계 품질이 올라감
- 프롬프트 설계 능력이 새로운 업무 역량으로 부상
2. 아이들이 사고하지 않는 환경에 익숙해지고 있다면
지난 추석에 제가 목격한 장면이 계속 마음에 걸립니다. 초등학교 5학년 조카가 거실 바닥에 엎드려 숙제를 하고 있었는데, 손에는 책 대신 태블릿이 있었습니다. 챗GPT 화면에 "독후감 써줘"라고 입력하고, 결과물이 나오자 그대로 옮겨 적기 시작했습니다. 조카는 그 과정 내내 한 번도 책을 열지 않았습니다. 사촌동생한테 살짝 얘기했더니 "요즘 애들 다 그래요"라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그 말이 오히려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 상황이 왜 문제가 될 수 있는지는 메타인지(Metacogni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메타인지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스스로 파악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 책 내용을 떠올리고, 어느 부분이 인상적이었는지 고민하고, 자기 생각을 문장으로 정리하는 과정이 바로 메타인지를 훈련하는 시간입니다. AI가 그 과정을 통째로 대신해버리면, 아이는 완성된 결과물은 갖게 되지만 그 훈련은 한 번도 하지 않은 셈이 됩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연구에 따르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보는 경험이 줄어들수록 학습자의 자기조절학습 능력이 저하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https://www.kice.re.kr)). 자기조절학습이란 학습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고, 과정을 점검하며, 결과를 평가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 능력은 단기 성적보다 장기적인 학습 역량과 훨씬 더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사에서는 핀란드, 캐나다 같은 나라의 디지털 교육 사례를 들며 "자연스러운 학습 방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마무리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 나라들이 디지털 도구를 도입하기 이전에 어떤 기초 교육을 먼저 깔아두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도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과, 스스로 생각하기 전에 도구부터 꺼내는 습관이 들어버리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UNESCO의 2023년 디지털 교육 보고서는 AI 도구 활용 교육에서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훈련을 병행하지 않으면 학습 격차가 오히려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출처: UNESCO](https://www.unesco.org)). 여기서 비판적 사고란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근거와 맥락을 스스로 따져보는 능력을 말합니다. AI가 내놓은 답이 맞는지 틀린지 판단하는 것도 결국 이 능력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순서가 뒤바뀌면 편리함이 결핍이 됩니다. 스스로 한 번이라도 멈춰서 생각하는 습관을 먼저 갖추지 않은 채 AI를 도구로 쓰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답을 찾는 방법이 아니라 답을 받아오는 방법만 익히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AI를 교육 현장에서 활용할 때 먼저 따져봐야 할 질문들이 있습니다.
- 이 도구가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돕고 있는가, 대신하고 있는가
- 아이가 결과물을 받기 전에 먼저 스스로 시도해보는 경험이 있었는가
- 교사와 부모가 AI 활용 방식을 함께 설계하고 있는가 AI가 교육에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건 도구 자체가 아니라, 생각하는 순서가 뒤바뀌는 상황입니다. 아이들이 AI를 쓰기 전에 먼저 스스로 틀려보는 경험을 충분히 쌓을 수 있다면, AI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조카가 다음번에는 독후감을 먼저 한 줄이라도 써본 뒤에 AI에게 묻는 방식을 선택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한 줄이 결국 학습의 시작점이 되니까요. 어른들이 먼저 그 순서를 가르쳐줘야 할 때가 됐습니다.
--- 참고: http://www.sisacast.kr/news/articleView.html?idxno=92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