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 진단을 받고도 "바빠서 병원을 못 갔다"는 말, 주변에서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저는 사회복지 현장에서 10년 가까이 일하면서 그 말을 수백 번 들었고, 그 결말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경희대 의과대학 연구팀이 AI로 만성신장질환을 5년 앞서 예측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가움과 무거움이 동시에 밀려온 이유입니다.

1. 당뇨 합병증 AI 예측, 5년 전에 알 수 있다는 조기발견의 의미
당뇨병은 혈당이 만성적으로 높은 상태가 지속되는 대사질환입니다. 무섭게도 합병증은 거의 소리 없이 옵니다. 그중에서도 당뇨병성 신증, 즉 당뇨로 인해 신장의 미세혈관이 서서히 망가지는 합병증은 초기에 아무 증상이 없어 발견이 늦어지기 쉽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만난 70대 어르신은 식당일을 하면서 당뇨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검진을 미루셨습니다. 그분을 투석 치료 후 댁으로 모셔다 드리던 엘리베이터 안에서 들은 말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병원 갈 시간이 없었어. 약값은 또 어떻게 대."
경희대 의과대학 연구팀은 바로 이 문제를 AI로 돌파하려 했습니다. 연구팀은 경희의료원 임상 데이터와 영국의 UK Biobank 데이터를 결합해, 제2형 당뇨병 환자에게 만성신장질환(CKD)이 5년 이내 발병할 위험을 조기에 예측하는 다중 모달 AI 모델을 개발했습니다. 여기서 다중 모달이란 한 가지 데이터가 아닌 여러 종류의 데이터를 동시에 입력받아 분석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이 연구에서는 혈당, 혈압, 지질 수치, 약제 이력 같은 임상 데이터와 망막 영상을 함께 활용했습니다.
망막 영상을 신장 예측에 쓴다는 것이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망막 혈관과 신장의 미세혈관은 구조가 매우 유사하고, 당뇨로 인한 손상 패턴도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눈 사진 한 장이 신장 상태를 간접적으로 알려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에디티지 인사이트에 게재된 연구팀 인터뷰에 따르면, AI 모델은 심층신경망(DNN)과 영상 분석 모델(VGG16)을 결합해 구성했으며, 예측 정확도는 한국 데이터 기준 88%, 영국 데이터 기준 72%로 나타났습니다 (출처: 에디티지 인사이트).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임상 데이터만 사용했을 때 예측 정확도: 약 70%대
- 임상 데이터 + 망막 영상 결합 시 예측 정확도: 88% (한국 기준)
- 활용 데이터: eGFR(사구체여과율), 소변 알부민-크레아티닌 비율, 망막 혈관 구조 등
여기서 eGFR이란 사구체여과율(Estimated Glomerular Filtration Rate)의 약자로, 신장이 1분 동안 얼마나 많은 혈액을 걸러내는지를 수치화한 지표입니다. 쉽게 말해 신장 기능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수치인데, 이 수치가 낮을수록 신장 손상이 심각하다는 의미입니다. AI가 이 수치를 핵심 근거로 삼아 예측을 내린다는 건, 임상의가 평소 중요하게 여기는 지표를 AI도 정확히 짚어냈다는 뜻입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30세 이상 성인의 당뇨병 유병률은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으며 합병증 예방을 위한 조기 검진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출처: 보건복지부). 5년이라는 시간은 환자에게는 생활을 바꿀 시간이고,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사례관리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시간입니다.
2. AI가 놓치는 사람은 누구인가, 의료격차의 새로운 얼굴
저는 이 연구 결과를 처음 접했을 때 정말 반가웠습니다. 사례관리 회의에서 "조기 개입이 중요하다"는 말을 수백 번 했지만, 막상 현장에는 그 '조기'를 알려줄 도구가 없었습니다. 혈액 검사 결과 하나 들고 "이분 신장이 걱정됩니다"라고 의사에게 말하는 수준이 전부였으니까요. AI가 5년을 앞당겨준다면, 우리 현장에서 늘 부족했던 시간을 실제로 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사를 다 읽고 난 뒤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한국 88%, 영국 72%라는 정확도의 차이는 단순한 인종 차이가 아닐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데이터가 더 많이, 더 꾸준히 수집되었느냐의 문제일 가능성이 큽니다. 제가 현장에서 만났던 그 어르신처럼, 1년에 한 번 건강검진도 제대로 못 받는 분들은 AI의 학습 데이터 안에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설명 가능한 AI, 즉 XAI(eXplainable AI)라는 개념이 이 연구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졌습니다. XAI란 AI가 어떤 근거로 결론을 내렸는지를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보여주는 기술을 말합니다. 연구팀은 SHAP와 Grad-CAM이라는 분석 기법을 활용해 AI가 망막의 어느 부위를, 어떤 임상 수치를 근거로 위험을 판단했는지를 시각화했습니다. 의료진이 AI 판단을 신뢰하고 실제 진료에 쓰려면 이런 투명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건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투명성은 AI를 만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습니다. 망막 촬영 자체가 일상인 사람과, 평생 한 번 찍을까 말까 한 사람 사이의 거리는 기술이 발전한다고 저절로 줄어들지 않습니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당뇨병 유병률은 30세 이상 기준 11.7%에 달합니다 (출처: 국가통계포털). 국민 12명 중 1명 이상이 당뇨병 환자라는 뜻인데, 그중 얼마나 많은 분들이 정기적으로 안저 검사를 받고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의료 영역의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정보 접근성이 낮은 계층이 새로운 형태의 차별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습니다 (출처: 국가인권위원회). 기술의 발전이 곧 평등의 확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AI 의료 시대에도 반복될 수 있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AI가 정말 모두에게 도착할 수 있을지. 다만 도착하지 못한 사람을 찾는 일이 사회복지의 몫이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3. 기술이 사람을 찾아가는 디지털헬스의 미래
연구팀은 향후 자동 망막촬영기나 웨어러블 기기와 연계해 1차 의료기관에서도 이 AI를 쓸 수 있도록 파이프라인을 통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저는 이 방향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1차 의료기관에 올 수 있는 사람이 전제되어야 그 파이프라인이 작동한다는 점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디지털헬스라는 개념은 병원 안의 데이터뿐 아니라 웨어러블, 스마트폰, IoT 기기 등 병원 밖 데이터까지 연결해 건강을 관리하는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을 뜻합니다. 이 개념 자체는 무척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스마트 기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어르신, 데이터 요금이 부담스러운 분들에게 디지털헬스는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기술이 없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기술이 사람을 못 찾아가는 게 문제였습니다. 사회복지 현장이 AI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알고리즘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AI가 닿지 못한 사람을 AI 곁으로 데려가는 연결의 역할일 것입니다. 그 연결이 갖춰질 때, 88%의 정확도가 88%의 사람에게 실제로 닿을 수 있습니다.
5년을 앞당겨 알려주는 기술은 분명 축복입니다. 그 5년의 선물이 더 많은 사람에게 고르게 도착하기를 바랍니다. AI의 정확도만큼이나 접근성에 대한 논의도 함께 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이 분야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정기적인 당뇨 합병증 검진 일정부터 주치의와 한 번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이 글은 개인적인 현장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건강 관련 결정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