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현장에서 챗GPT 같은 생성형 AI를 업무에 쓰기 시작한 건 이미 꽤 된 일입니다. 그런데도 막상 나 AI 써요라고 말하기가 어색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사람의 일이라고 배운 이 직종에서 AI를 쓴다는 게, 어딘가 원칙을 벗어나는 일처럼 느껴졌거든요.

1. 챗GPT 활용, 사회복지사는 왜 낯설어할까
사회복지사는 본질적으로 관계 기반의 전문직입니다. 상담, 사례관리, 자원 연계처럼 사람과 직접 부딪히는 일이 핵심이다 보니, 인공지능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 현장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이 오랫동안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챗GPT를 써봤을 때도 비슷한 감각이었습니다. 이게 맞는 건가, 써도 되는 건가 싶었죠.
그런데 막상 쓰다 보니 달랐습니다. 사회복지사가 하루에 처리하는 문서 작업의 양을 생각해보면, AI가 들어올 여지는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결과보고서 초안, 회의록 정리, 공동모금회 배분사업계획서, 이용자 안내문 작성. 이 작업들은 사람을 직접 만나는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생성형 AI는 효율적인 도구가 됩니다. 생성형 AI란 학습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글, 이미지, 코드 등을 만들어내는 인공지능을 말합니다.
국내 사회복지사 수는 2023년 기준 약 130만 명을 넘어섰고, 이들 중 상당수는 1인 또는 소규모 팀으로 다양한 업무를 동시에 처리하고 있습니다.
문서 작업에 드는 시간을 줄이는 것 자체가 곧 이용자와의 접촉 시간을 늘리는 일과 연결됩니다. 저는 이 논리가 AI 활용을 정당화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라고 봅니다.
GPT-5 같은 최신 대형언어모델의 등장도 맥락을 바꾸고 있습니다. 대형언어모델이란 수십억 개 이상의 파라미터로 학습된 언어 처리 모델을 말하는데, 쉽게 말해 문맥을 이해하고 자연스러운 문장을 생성하는 능력이 이전 세대와는 차원이 다른 AI입니다.
이전 버전들이 단순 반복 문장을 생성하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의 모델들은 지역 맥락이나 대상자 특성을 반영한 초안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2. 실제로 어디에 쓸 수 있는가
제가 직접 써봤을 때 가장 체감이 컸던 건 사업계획서 초안 작업이었습니다. 매년 공동모금회 배분사업계획서를 쓸 때마다 첫 줄에서 막히는 경험을 반복했습니다.
발달장애인 가족을 위한 정서지원 프로그램의 사업계획서 초안을 써줘. 목적, 필요성, 활동계획, 성과지표 중심으로라고 입력하자, 구조가 잡힌 초안이 몇 초 안에 나왔습니다.
물론 그대로 쓸 수는 없습니다. 지역 현황, 실제 수치, 기관 고유의 맥락을 다시 채워 넣어야 합니다.
하지만 막막함이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체감 업무량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복지 제도 안내문 작성에도 효과적이었습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나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처럼 제도 설명이 복잡한 경우, 한국어가 서툰 이주민이나 처음 접하는 어르신에게 맞춤 안내문을 만드는 데 AI가 유용했습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는 개념도 여기서 필요해집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란 AI에게 원하는 결과를 정확하게 얻기 위해 질문이나 지시문을 설계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어르신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줘라는 한 마디를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결과물의 질이 달라졌습니다.
현장에서 AI를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업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공동모금회 배분사업계획서 초안 작성 (목적, 필요성, 성과지표 포함)
- 결과보고서 초안 구성 (활동 흐름과 만족도 요약)
- 이용자 맞춤 복지 제도 안내문 작성 (어르신, 이주민 대상 등)
- 프로그램 회기별 계획안 초안 (월별 활동 내용, 대상자 수, 성과지표)
- 기관 소식지 원고, 행사 진행 멘트, 민원 응대 안내문
이 목록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사람을 직접 대면하지 않는 간접 업무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구분이 사회복지 현장에서 AI를 활용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3. 회색지대, 개인정보 보호의 선이 가장 애매하다
AI 활용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원칙이 있습니다. 개인정보와 사례 기록은 절대 입력하지 말 것. 저도 이 원칙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문제는 그 선의 위치가 생각보다 훨씬 불분명하다는 겁니다.
개인정보보호법에서 정의하는 개인정보란 이름, 주민번호처럼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말합니다. 그런데 실무에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70대 독거 여성, 우울감 호소는 개인정보인가요. 프로그램 참여자 수와 평균 연령, 만족도 응답 일부를 입력하는 건 괜찮은가요. 상담 일지 초안을 잡으려고 내담자가 한 말의 일부를 그대로 넣는 건 어떤가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AI 활용에 대한 논의가 빠르게 늘고 있는데, 정작 이 회색지대에 대한 기준은 여전히 없습니다.
보건복지부나 한국사회복지사협회 차원의 구체적 매뉴얼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결국 현장의 사회복지사 개개인이 자기 판단으로 그 선을 긋고 있는 셈입니다.
비식별화 처리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개인을 특정할 수 없도록 이름, 생년월일, 주소 등을 제거하거나 변환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론적으로는 비식별화된 정보는 개인정보가 아닙니다.
하지만 70대 독거 여성, 특정 지역, 우울감, 최근 입원 이력처럼 여러 속성이 결합되면 재식별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완전한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단순히 이름만 빠진다고 안전한 게 아니라, 조합 자체가 식별 위험을 만들 수 있다는 감각이 필요합니다.
AI 활용을 권장하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커질수록, 이 회색지대에서의 사고 가능성도 함께 커집니다. 이건 사회복지사 개인이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현장 전체가 함께 만들어야 할 윤리적 기준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결국 AI는 도구입니다. 얼마나 잘 쓰느냐보다, 어디까지 써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저는 지금도 AI를 씁니다. 다만 입력창 앞에서 한 번 더 묻습니다. 이 문장에 사람이 담겨 있지는 않은가. 그 질문 하나가, 도구와 원칙 사이의 균형을 지켜주는 것 같습니다.
AI가 더 깊은 만남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말이 현장에서 실제로 의미를 가지려면, 그 경계를 함께 만드는 작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참고 자료
이 글은 개인적인 현장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법률·정책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