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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자서전 (회상치료, 디지털 포용, 시니어 교육)

by 호풍이 2026. 5. 19.

할머니가 ai로 자서전을 쓰는 모습

 

 

강북구에서 60세 이상 어르신 17명이 ChatGPT로 자서전을 완성했다는 소식을 봤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어르신들의 디지털 격차를 매일 보는 저로서는, 키오스크 앞에서 멈춰 서시던 그 손이 AI와 마주 앉는 모습이 쉽게 그려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한 어르신이 "내 이야기가 책으로 남게 돼 꿈만 같다"며 눈시울을 붉히셨다는 대목에서, 저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1. AI 자서전, 회상치료와 만나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회상치료를 자주 접합니다. 회상치료란 노인이 자신의 과거 경험을 언어나 이미지로 되살리며 현재의 심리적 안정과 자아 통합을 꾀하는 심리사회적 개입 기법입니다.

쉽게 말해,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함으로써 "내 인생이 의미 있었다"는 감각을 되살려 주는 치료적 접근입니다.

제가 직접 어르신들과 회상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해본 경험상, 이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흩어진 기억을 정리하고 언어로 꺼내는 일입니다.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면 시간 순서가 뒤섞이거나, 말하고 싶은 건 많은데 표현이 막히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강북구 프로그램에서 ChatGPT가 바로 그 역할을 대신했다는 점이 저에게는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서사 구조화 방식으로 운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서사 구조화란 개인의 삶을 시간 흐름에 따라 의미 있는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심리학에서는 이를 통해 자아 정체성이 강화되고 우울감이 완화된다고 보고됩니다.

실제로 노인의 회고적 서사 작업이 심리적 안녕감에 미치는 효과는 국내외 연구에서 꾸준히 확인된 바 있습니다.

프로그램은 7월 말부터 8월 말까지 매주 목요일, 총 6회에 걸쳐 진행됐고 이후 한 달간의 편집 보완을 거쳐 17권의 자서전이 완성됐습니다. 서울사이버대학교 웹문예창작학과 최원대 교수가 감수에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마지막 강의에서는 지워내고 싶은 기억을 종이에 적어 태우는 '스트레스 화형식'이 진행됐는데, 이건 단순한 이벤트가 아닙니다.

에릭슨의 심리사회 발달이론에서 노년기의 핵심 과제로 꼽히는 자아 통합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자아 통합이란 자신의 삶 전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의미를 발견하는 발달 과업으로, 이것이 실현되지 못하면 절망과 후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화형식은 바로 그 화해의 의례였던 셈입니다.

 

 

2. 시니어 교육이 미담으로 끝나면 안 되는 이유

이 사례가 저에게 각별하게 다가온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출간 기념식에서 한 어르신이 한평생 살아온 이야기가 책으로 남게 돼 꿈만 같다며 눈시울을 붉히셨다는 대목에서, 저도 덩달아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그 감정은 단순한 성취감이 아닙니다. 평생 누군가의 배우자, 부모, 직원으로만 살아온 분이 처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긴 순간의 감각입니다.

이 사례를 보며 "AI는 젊은 사람들의 기술"이라는 고정관념이 정면으로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현장에서 더 자주 목격하는 장면은 다릅니다.

키오스크 앞에서 멈춰 서신 어르신, 스마트폰 문자 알림 하나가 낯설어 자녀에게 전화부터 거시는 분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디지털 격차는 단순히 기기 사용 능력의 차이가 아닙니다. 디지털 격차란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접근성과 활용 능력의 불평등으로, 이것이 확대될수록 의료·금융·행정 서비스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넓어집니다.

실제로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 대비 69.9%에 불과합니다. 10명 중 3명은 여전히 디지털 세상에서 유효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3. 디지털 포용, 17명의 감동을 정책으로 잇기

강북구 사례가 보여준 것은 AI가 시니어에게도 작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현장에서 느껴보니, 이런 프로그램이 일회성 행사로 끝날 때 남는 건 참여자의 감동이 아니라 지자체의 보도자료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사례 역시 훈훈한 뉴스로 소비되고 끝난다면, 17명의 감동이 정책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AI 활용 회상·서사 프로그램이 실제로 확산되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단발성 강좌가 아닌, 복지관·치매안심센터·평생학습센터를 연계한 지속적 운영 체계 구축
  • 보건복지부와 교육부가 공동으로 개발하는 표준 커리큘럼 마련
  • 참여 어르신의 심리적 변화를 측정하는 사전·사후 평가 도입
  • 디지털 기기 접근성 지원과 1:1 보조 인력 배치 병행

이 네 가지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확산을 외치면, 결국 프로그램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외형만 퍼지는 결과가 됩니다. 제 경험상 이건 노인복지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목격해온 패턴이기도 합니다.

강북구의 17명이 완성한 자서전이 강북구 교육박람회 전시 부스에 놓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 작은 실험이 시니어 디지털 포용 정책의 진짜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AI는 어르신을 배제하는 기술이 아니라, 평생 글로 자신을 남겨본 적 없는 분들에게 가장 따뜻한 매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 가능성이 정책으로 실현되려면, 미담 한 편으로 충분하다는 안도감을 걷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정답이 정해진 문제는 아닐 겁니다. 다만 한 번의 감동을 다음 사람의 기회로 잇는 일이, 결국 정책의 가장 본질적인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참고 자료

이 글은 개인적인 현장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심리·정책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