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권리다." 이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바로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습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권리 프레임의 힘을 누구보다 자주 봐온 사람인데도, 그 앞에서 잠시 멈칫했습니다.
그 불편함이 뭔지 한참을 곱씹었습니다. 그러다 최근 시각장애인 보조공학 사례를 보면서, 멈칫했던 이유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1. AI 접근권 논쟁, 권리라는 말 앞에서 멈칫한 이유
"AI는 권리다"라는 말, 처음 들었을 때 바로 고개가 끄덕여지셨습니까? 저는 솔직히 그러지 못했습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십수 년을 일하며 권리 프레임이 현장을 얼마나 바꿔놓는지 몸으로 경험해온 저조차도, 그 말 앞에서는 잠시 멈칫했습니다. 그 불편함의 실체를 파고들다가, 오히려 해법의 방향이 보였습니다.
사회복지 영역에서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표현은 꽤 자주 쓰입니다. 패러다임 전환이란 어떤 분야의 지배적 관점 자체가 완전히 뒤집히는 변화를 의미합니다. 장애인 복지에서 이 전환의 핵심은 '시혜에서 권리로'였습니다. 장애인을 도움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권리를 가진 주체로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가 처음 사회복지사로 일을 시작하던 무렵, 현장에서는 아직도 "혜택을 드린다"는 표현이 남아 있었습니다. 장애인 당사자를 사업의 수혜자로 놓는 구조였습니다.
그 구조가 바뀌는 데에는 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이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자기결정권이란 개인이 자신의 삶에 관한 선택과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이 개념이 현장에 정착되면서 서비스 계획 방식도, 당사자를 대하는 태도도 실질적으로 달라졌습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은 이 흐름을 국제적으로 공식화한 문서입니다. 장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보장하기 위해 채택된 국제조약으로, 한국은 2009년 비준했습니다. 이 조약 이후 디지털 정보 접근권 역시 장애인의 기본권 논의 안으로 들어왔고, 그것은 분명 옳은 방향이었습니다.
2. 권리 프레임이 'AI 개발 단계'에 적용될 때의 문제
2026년 4월, 서울역에서 열린 시각장애인 대상 AI 보조공학 세미나에서 발표된 내용들을 접하면서 저는 다시 그 불편함을 꺼내 들었습니다. 발표된 솔루션들은 인상적이었지만, 행사 전후로 오가던 논의 중 "AI는 도구가 아니라 권리"라는 표현이 제 머릿속에서 계속 걸렸습니다.
제가 직접 현장에서 봐온 경험상, 권리 프레임은 이미 존재하는 자원이나 서비스에서 배제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할 때 가장 강력하게 작동합니다. 반면 아직 개발 중인 기술에 처음부터 권리 의무를 지우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책임의 무게가 개발자 한쪽에만 몰리고, 정작 그 기술이 실제로 쓸 수 있는 형태로 나오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접근성이라는 개념 자체는 이미 법적 근거가 있습니다. 접근성이란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용자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특성을 의미합니다. 한국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정보통신기기와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보장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이는 상용화된 서비스를 대상으로 합니다.
그 의무가 적용되는 시점과 대상을 어디로 잡느냐가 핵심입니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개발 단계에서 요구할 수 있는 것과,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기술에서 요구할 수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 구분이 시각장애인의 접근권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권리가 실질적으로 실현되기 위한 조건을 따지는 일이라고 봅니다.
3. 보조공학 솔루션이 보여준 단계적 책임 분담의 실물
이 세미나에서 제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 구조를 실제로 구현한 사례였습니다. 넥스트지가 선보인 'AI 아토 Plus'는 ChatGPT, Gemini, Claude, Perplexity, Grok이라는 5대 AI 엔진이 먼저 독립적으로 개발된 뒤, 그 위에 시각장애인 최적화 인터페이스를 별도로 설계한 구조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통합 플랫폼이라고 하면 단순히 여러 기능을 하나로 묶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스크린리더와의 완벽 호환을 전제로 전용 단축키 시스템을 따로 설계했다는 점에서 접근 방식 자체가 달랐습니다.
스크린리더란 화면의 텍스트와 구조를 음성으로 변환해 시각장애인이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돕는 보조공학기기를 말합니다. 보조공학기기란 장애인이 일상생활이나 직무 수행에서 독립성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기 또는 소프트웨어를 통칭하는 용어입니다.
이 솔루션에서는 이미지 해석, 문서 요약, 전문 자료 분석 같은 작업을 스크린리더 환경에서 끊김 없이 처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와 함께 소개된 '앱포미'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자연어 대화만으로 3~5분 안에 개인 맞춤형 직무 앱을 만들 수 있는 솔루션으로, AI 위자드가 앱을 자동 생성합니다.
AI 위자드란 사용자가 복잡한 설정 없이 대화형 방식으로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게 안내하는 자동화 인터페이스를 말합니다. 스마트폰의 GPS, 카메라 등 각종 센서를 제어하는 앱까지 비전문가가 직접 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직업 재활 현장의 활용 가능성이 크다고 봤습니다.
이 솔루션들의 공통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AI 엔진은 먼저 개발되고, 장애인 접근성은 별도 레이어로 설계된다
- 스크린리더 호환과 전용 단축키 시스템이 처음부터 포함된다
- 일상 보행부터 직무 수행까지, 실제 생활 반경에 맞춰 적용된다
AI 접근권을 둘러싼 논의는 그동안 '권리냐 아니냐'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사회복지 현장에서 길어 올린 결론은 그 질문 자체를 한 칸 더 옮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권리를 선언하는 것과 그 권리가 실제로 작동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별개의 일이고, 전자만 있고 후자가 없으면 현장에 남는 건 선언뿐입니다.
제가 사회복지 시각에서 분명히 말하고 싶은 건 하나입니다. 시각장애인이 AI 시대의 주체가 되는 길은 권리 선언만으로 열리지 않습니다. 개발 단계에서는 작동하는 기술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상용화와 확산 단계에서 정부·사회복지·보조공학 산업이 함께 격차를 줄여가는 단계적 책임 분담의 구조가 필요합니다. 넥스트지의 사례는 그 구조가 이미 실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좋은 솔루션이 이미 나와 있어도 현장과 연결되지 않으면 결국 또 다른 선언으로 끝납니다. 권리라는 말이 진짜 무게를 가지려면, 그 말이 닿을 자리를 먼저 만드는 일이 같이 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AI는 권리'라는 문장을, 어느 단계에 적용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보시나요?
참고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정책이나 법률 조언이 아닙니다.